튜즈데이 웰드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튜즈데이 웰드는 미국의 배우이다. 1943년 뉴욕에서 태어났으며, 1956년 영화 《락, 락, 락》으로 데뷔했다. 1960년대 초 20세기 폭스와 장기 계약을 맺고 TV 시리즈 《도비 길리스의 많은 사랑》에 출연하며 인지도를 높였다. 영화 《미스터 굿바를 찾아서》(1977)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이후 《도둑》(1981),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1984)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했으며, 1990년대 이후에도 영화와 TV 드라마에서 조연으로 활동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골든 글로브 신인여우상 수상자 - 다이애나 로스
다이애나 로스는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 출신으로 슈프림스의 리드 싱어로서 성공을 거둔 후 솔로 가수와 배우로서도 세계적인 명성을 얻으며 대중문화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 골든 글로브 신인여우상 수상자 - 올리비아 핫세
올리비아 핫세는 1951년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난 배우로,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 역으로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으며 다양한 영화와 TV 시리즈에 출연하고, 성우로도 활동했다. - 1943년 출생 - 존 케리
존 케리는 미국의 정치인으로, 민주당 소속으로 매사추세츠주 연방 상원의원과 국무장관을 역임하고 2004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며, 현재는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기후변화 문제 담당 대통령 특사로 활동하고 있다. - 1943년 출생 - 황석영
황석영은 만주 출생으로 한국 전쟁을 겪고 성장하여 사회 현실과 시대상을 반영하는 소설을 쓴 대한민국의 소설가이다. - 뉴욕 출신 배우 - 테아 레오니
1989년 드라마 데뷔 후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에서 활약하며 인지도를 높인 미국의 배우 테아 레오니는 유니세프 친선대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 뉴욕 출신 배우 - 거트루드 버그
거트루드 버그는 《골드버그 가족》을 쓰고 제작하고 출연하여 큰 성공을 거둔 미국의 배우, 작가, 프로듀서로, 라디오와 텔레비전 시트콤 장르 발전에 기여했으며 에미상 후보, 토니상 여우주연상 수상, 블랙리스트에 오른 동료 배우 옹호, 자서전 출판 등의 활동을 했다.
튜즈데이 웰드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 | |
본명 | 수전 커 웰드 |
출생일 | 1943년 8월 27일 |
출생지 | 맨해튼, 뉴욕시, 미국 |
사망 여부 | 생존 |
직업 | 배우 |
활동 정보 | |
활동 기간 | 1955년–2001년 |
개인 정보 | |
배우자 | 클로드 하츠 (1965년-1971년; 이혼) 더들리 무어 (1975년-1980년; 이혼) 핀커스 주커만 (1985년-2001년; 이혼) |
자녀 | 2명 |
2. 어린 시절 및 가족
튜즈데이 웰드는 1943년 8월 27일 금요일, 맨해튼에서 수잔 커 웰드로 태어났다.[1] 그녀의 아버지는 매사추세츠주의 웰드 가문 출신인 라스로프 모틀리 웰드였으며, 딸이 네 살이 되기 직전인 1947년에 4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녀의 어머니 요센 발푸어 커는 예술가이자 잡지 ''라이프''의 삽화가인 윌리엄 발푸어 커의 딸이었으며, 영국 미들섹스주 일링에서 태어났다.[2] 요센 발푸어 커는 라스로프 웰드의 네 번째이자 마지막 부인이었다.[3][4] 캐나다 출생의 윌리엄 발푸어 커는 스코틀랜드 혈통이었다.[5] 그의 어머니 릴리 플로렌스 벨 커는 발명가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의 사촌이었고,[6] 그의 아버지 윌리엄 커는 스코틀랜드 사업가이자 은행가였다.[7]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오인된 남자로 13세에 데뷔했으며,[12] 16세에 출연한 TV 시리즈 《도비의 청춘》으로 골든 글로브상을 수상했다.[17][14] 1977년 《미스터 굿바를 찾아서》에서는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24] 이후 TV 출연이 많아졌다.
웰드는 두 명의 형제인 사라 킹 웰드와 데이비드 발푸어 웰드가 있었다.[8] 그녀는 1959년 10월 9일 금요일에 법적으로 이름을 "튜즈데이 웰드"로 변경했다.[9][10]
3. 경력
3. 1. 초기 경력 (1950년대 ~ 1960년대 초)
튜즈데이 웰드(Tuesday Weld영어)의 어머니는 남편의 죽음 이후 재정적 어려움에 처하자, 웰드를 모델로 일하게 하여 가족을 부양했다.[8] 1959년 10월, 웰드는 "튜즈데이"라는 이름을 공식적으로 채택했는데, 이는 어린 사촌 메리 커가 "수잔"을 발음하지 못해 지은 어린 시절 별명 "투투"에서 파생된 것이었다.[11]
웰드의 어머니는 모델 경력으로 얻은 이력서를 이용하여 그녀에게 에이전트를 구해주었다. 웰드는 12세에 텔레비전 연기로 데뷔했고, 같은 해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범죄 드라마 ''오인된 남자''에서 단역으로 장편 영화에 데뷔했다.[12]
1956년 웰드는 레코드 프로모터 앨런 프리드와 가수 척 베리, 프랭키 라이먼, 조니 버넷이 출연한 ''락, 락, 락''에서 주연을 맡았다. 이 영화에서 코니 프랜시스가 웰드의 노래 부분을 불렀다. TV에서는 ''굿이어 플레이하우스''의 "백우즈 신데렐라" 에피소드에 출연했다. 그녀는 브로드웨이에서 ''계단의 어둠''의 언더스터디를 맡았다.
웰드는 20세기 폭스에서 제작한 폴 뉴먼–조앤 우드워드 코미디 ''깃발을 높이 쳐들고, 소년들!''(1958)에서 조연을 맡았고, 파라마운트 픽처스에서는 웰드가 대니 케이의 딸로 출연한 ''더 파이브 페니즈''(1959)에서 케이는 웰드를 "27살을 바라보는 15살"이라고 불렀다.[13] 그녀는 ''오지 앤 해리엇의 모험''(1958–59)에 여러 차례 게스트로 출연했다. 1959년 에피소드 "비밀의 섬"에서 에프렘 짐발리스트 주니어와 함께 ''77 선셋 스트립''에 출연했다.
3. 2. 20세기 폭스와의 계약 (1960년대 초 ~ 중반)
20세기 폭스의 임원들은 《랠리 어라운드 더 플래그, 보이즈!》에서 웰드의 연기에 깊은 인상을 받아 그녀와 장기 계약을 체결했다.[14] 그들은 그녀를 CBS 텔레비전 시리즈 《도비 길리스의 많은 사랑》에 출연시켰고, 1년 동안 35000USD의 급여를 지급했다.[15] 웰드는 도비 길리스(드웨인 히크먼 분)의 사랑을 받는 탈리아 메닝거 역을 맡았고, 탈리아의 애정 경쟁자로는 밀턴 아미테이지(워렌 비티 분) 등이 있었다. 웰드는 단 한 시즌만 출연했지만, 이 쇼는 그녀에게 상당한 전국적인 홍보 효과를 가져다주었고,[16] 그녀는 골든 글로브상에서 "가장 유망한 신인" 공동 수상자로 선정되었다.[17][14]
20세기 폭스에서는 빙 크로스비와 파비안 포르테가 출연한 《하이 타임》에서 자유로운 영혼의 대학생 조이 역을 맡았다. 1960년 10월 9일, NBC의 《디나 쇼어 셰비 쇼》의 시즌 오프닝에서 파비안에게 사랑 노래를 불렀다. 4주 후인 11월 13일, 웰드는 NBC의 《탭 헌터 쇼》에 게스트로 출연하여 네트워크에 다시 출연했다. 그녀는 《제인 그레이 시어터》의 "더 몰몬스"(1960)에 게스트로 출연했다.[18]
20세기 폭스를 위해 웰드는 속편 《페이튼 플레이스 귀환》(1961)에서 원작에서 호프 랭이 연기한 역할을 맡아 조연을 맡았다. 그녀가 연기한 근친상간 피해자는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영화는 전작보다 성공하지 못했다.[8] 그녀는 랭과 함께 《컨트리》(1962)에서 엘비스 프레슬리를 지원했다. 웰드는 프레슬리와 화면 밖에서 로맨스를 가졌다.[19]
20세기 폭스는 또한 그녀를 《팔로우 더 선》("가장 높은 벽")과 《어드벤처 인 파라다이스》("벨벳 트랩")에 게스트로 출연시켰다. 1961년 11월 12일, 그녀는 20세기 폭스가 제작하고 마릴린 맥스웰과 게리 록우드가 출연한 ABC의 텔레비전 시리즈 《버스 스톱》의 일곱 번째 에피소드에서 가수 셰리 역을 연기했다. 이 에피소드는 윌리엄 잉의 연극을 각색한 것으로, 웰드는 마릴린 먼로가 스크린에서 처음 연기한 역할을 맡았다.
웰드는 프랭크 태슐린 코미디 《배철러 플랫》(1962)에서 테리 토머스를 지원했다. 영화 개봉 후 그녀는 《왓츠 마이 라인?》에 유명 미스터리 게스트로 출연했다.[20]
웰드의 어머니는 배우 존 아일랜드와 같은 연상의 남자와의 십 대 딸의 연애에 충격을 받았지만, 웰드는 저항하며 "저를 내버려두지 않으면 배우를 그만두겠어요. 그럼 엄마는 더 이상 돈을 벌 수 없게 될 거예요."라고 말했다. 웰드는 "마침내, 내가 열여섯 살이 되었을 때, 집을 나왔어요. 그냥 문을 열고 나가서 내 집을 샀어요."라고 회상했다.
그녀는 스탠리 큐브릭이 1962년 영화에서 로리타 역으로 가장 먼저 선택했지만, "나는 그것을 연기할 필요가 없었어요. 나는 로리타였어요."라고 말하며 제안을 거절했다.[24]
웰드는 3개월 동안 뉴욕의 그리니치 빌리지에 가서 "스스로를 연구"했다. 그 후 그녀는 재키 글리슨과 스티브 맥퀸과 함께 블레이크 에드워즈가 윌리엄 골드먼의 소설을 각색한 《레인》에 출연했지만, 이 영화는 작은 성공에 그쳤다.[21]
그녀는 1962년 2월 7일 에피소드 《네이키드 시티》의 "두 사비지 연구"에서 실제 사건을 각색하여 뛰어난 평가를 받았다. 이 에피소드는 찰스 스타크웨더 (립 톤 분)와 그의 어린 신부 오라 메이 영햄 (웰드 분)의 사건을 다루며, 스타크웨더는 뉴욕시에서 살인 행각을 벌였다.[22] 그녀는 《루트 66》의 "사랑은 마른 아이", 《벤 케이시》의 "악인을 만났을 때"(1962), 《딕 파웰 극장》의 "죽을 시간"(1962)과 파비안과 함께 "어둠이 올 때까지 달려라"(1962)에 게스트로 출연했다.
1963년 웰드는 안젤라 랜즈베리와 함께 에피소드 "백룸에서 뭔가 미친 일이 벌어지고 있다"에서 《일레븐스 아워》에 데니스 던리어로 게스트로 출연했다. 그녀는 프랭클린 J. 섀프너가 연출한 《듀퐁 쇼 오브 더 위크》의 "릴라 클레어의 전설"에 출연했다.
1964년 그녀는 크레이그 스티븐스의 CBS 드라마 《미스터 브로드웨이》의 에피소드 "에밀리를 잘 지켜봐"에서 제목 역할을 맡았다. 같은 해, 그녀는 《도망자》의 에피소드 "어두운 구석"에서 고통받는 시각 장애인 여성으로 출연했다.
그녀는 잭 팔란스의 서커스 드라마 《지상 최대의 쇼》에서 이전 공동 출연자 드웨인 히크먼과 함께 ABC에서 별도의 에피소드로 출연했다.
웰드는 코미디 《스웨덴으로 가자》(1965)에서 밥 호프를 지원했다.
3. 3. 스타덤과 다양한 역할 (1960년대 중반 ~ 1970년대)
1965년, 웰드는 노만 주이슨 감독의 영화 신시내티 키드에 출연하여 스티브 맥퀸과 함께 연기했다. 7만 명의 군중 앞에서 자동차에서 뛰어내려 허리케인 피해자들을 위한 기금 마련 행사에서 지역 주지사를 만나는 것을 거부하면서 약간의 논란이 있었다.[23] 이 영화는 큰 인기를 얻었다.
웰드는 로디 맥도웰, 루스 고든, 하비 코먼과 함께 출연한 로드 러브 어 덕(1966)에서 주연을 맡았다. 웰드는 좋은 평을 받았지만, 영화는 흥행에 실패했다.
그녀는 조지 C. 스콧과 콜린 듀허스트와 함께 TV 드라마 시련(1967)의 TV 각색판에서 애비게일을 연기했다. 시마론 스트립(1967)에 게스트로 출연한 후, 웰드는 앤서니 퍼킨스와 함께 출연한 프리티 포이즌(1968)에서 주연을 맡았다. 이 영화는 컬트 영화로 성공했지만, 그녀는 이 영화를 싫어했고 노엘 블랙 감독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이 무렵, 웰드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로즈메리의 아기, 참을 수 없는 용기, 선인장, 밥 & 캐롤 & 테드 & 앨리스와 같이 흥행에 성공한 영화들의 출연 제의를 거절한 것으로 유명해졌다.[24] 1971년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웰드는 이러한 역할을 거절한 이유가 정확히 상업적 성공을 거둘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성공을 바란다고 생각하세요? 저는 당시 간호 중이었기 때문에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를 거절했지만, 깊은 속으로는 그것이 엄청난 성공을 거둘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밥과 캐롤과 프레드와 수' 또는 무엇이라고 불렸든 그것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성공의 냄새가 났죠."[24]
웰드가 출연한 영화에는 그레고리 펙과 함께 출연한 아이 워크 더 라인(1970), 잭 니콜슨과 오손 웰스가 출연하고 헨리 재글롬이 감독한 안전한 곳(1971), 그리고 퍼킨스와 다시 함께 출연하여 골든 글로브상 후보에 오른 플레이 잇 애즈 잇 레이스(1972)가 있다.[25]
3. 4. 텔레비전 활동과 아카데미상 후보 (1970년대 후반 ~ 1980년대)
웰드는 텔레비전에서 다시 활동을 시작하여, 1974년작 ''살인의 그림자''와 1975년작 ''할리우드의 F. 스콧 피츠제럴드''에서 젤다 피츠제럴드 역을 맡았다.
1977년 영화 ''미스터 굿바를 찾아서''에서 통제 불능의 애인 캐서린 역을 맡아 주목을 받았는데, 짧은 출연 시간 동안 난교, 이혼, 많은 양의 술, 두 번의 낙태를 연기하며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24] 이후 웰드는 닉 놀테와 함께 ''누가 비를 멈출까''(1978)와 앙상블 풍자극 ''시리얼''(1980)에 출연했다.
그녀는 텔레비전을 선호한다면서, "제가 TV에 끌리는 점은 속도감이에요. 아무리 비중 있는 역할이라도 2주면 충분해요. 역할을 너무 깊이 생각하는 것은 저에게 재앙이에요. 어쨌든, 하자고요, 해치우자고요."라고 말했다.[26]
텔레비전 영화 ''과실의 문제''(1978)에서 자신의 아이들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여성 역을 맡았고, ''어머니와 딸: 사랑의 전쟁''(1980), ''마담 X''(1981) 리메이크작, 그리고 새로운 버전의 ''레인메이커''(1982)에서 주연을 맡았다.
장편 영화에서 웰드는 마이클 만의 호평을 받은 1981년 영화 ''도둑''에서 제임스 칸의 상대역으로 좋은 조연을 맡았다. ''작가! 작가!''(1982)에서 알 파치노의 아내 역을, TV 영화 ''우리의 불행한 불만족의 겨울''(1983)에서 도널드 서덜랜드와 함께 출연하여 에미상 후보에 올랐다.
1984년, 세르지오 레오네의 갱스터 서사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에서 보석상 비서 역을 맡았다. 이 영화에서 그녀는 다이아몬드 배송을 훔치는 계획에 참여하고, 강도 사건 동안 로버트 드 니로의 캐릭터인 데이비드 "누들스" 애런슨을 부추겨 그녀의 공모하에 그녀를 "강간"하게 한다. 나중에 강도단과 재회하여 제임스 우즈의 캐릭터인 맥스 베르코비치의 정부가 되고, 맥스의 망상적이고 심지어 자살적인 야망을 보고 충격을 받은 그녀는 누들스에게 맥스를 경찰에 배신하도록 설득한다. 이 연기로 웰드는 1984년 BAFTA BAFTA상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TV에서 웰드는 ''경멸과 사기''(1984), ''폭력의 고리''(1986), ''어떤 공통점''(1986)에 출연했다. ''하트브레이크 호텔''(1988)에서 조연을 맡았다.
3. 5. 후기 경력 (1980년대 후반 ~ 현재)
웰드는 1990년 《서스펜스의 여주인》 에피소드에서 앤서니 퍼킨스와 재회했다.
1993년, 그녀는 마이클 더글라스와 로버트 듀발이 출연한 영화 《폴링 다운》에서 경찰관의 신경증적인 아내 역을 연기했다. 1996년 《필링 미네소타》, 2001년 《인베스티게이팅 섹스》, 2001년 《첼시 월스》에서 작은 조연 역할을 맡았다.
4. 개인사
튜즈데이 웰드는 세 번 결혼했다. 1965년 10월 23일부터 1971년 2월 18일 이혼할 때까지 시나리오 작가 클로드 하르츠와 결혼했으며, 1966년 8월 26일에 딸 나타샤를 낳았다. 웰드는 이혼 과정에서 나타샤에 대한 양육권을 받았고, 매달 100USD의 양육비를 받았다.[27]
1975년 9월 20일에는 영국 배우, 음악가이자 코미디언인 더들리 무어와 결혼했다. 1976년 2월 26일, 그들은 아들 패트릭을 낳았다. 부부는 1980년에 이혼했으며, 웰드는 200000USD의 합의금과 향후 4년 동안 매달 3000USD의 위자료, 그리고 매달 2500USD의 추가 양육비를 받았다.[28]
1985년 10월 18일, 이스라엘 출신의 콘서트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지휘자인 핀차스 주커만과 결혼하여 그의 딸들인 아리아나와 나탈리아의 의붓어머니가 되었다. 부부는 2001년에 이혼했다.[29] 법원 서류에서 주커만은 웰드가 "그 곡을 전에 들었는데, 왜 또 콘서트에 가야 하나요?"라고 말했고, "저는 무대 뒤 장면을 참을 수 없어요.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듣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했다고 인용했다.[30]
결혼 사이에 웰드는 알 파치노,[31] 데이비드 스타인버그,[32] 미하일 바리시니코프[33] (그의 전 여자친구인 제시카 랭은 웰드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34] 오마 샤리프,[35] 리처드 기어[36] 그리고 라이언 오닐과 데이트했다.[37]
웰드는 2000년대 후반에 뉴욕 몬토크에 있는 해변 별장을 팔고 콜로라도 카본데일로 이사했다. 2018년에는 콜로라도를 떠나 할리우드 힐스에 1800000USD 상당의 주택을 구입했다.[38] 웰드와 당시 남편이었던 주커만은 1990년 브로드웨이 장기 공연인 ''오! 캘커타!''(Oh! Calcutta!)를 제작하고, 1988년 맨해튼 아파트에서 배우 아내 그위다 돈호웨와 함께 자살한 노먼 킨의 유산으로부터 74 서프사이드 애비뉴를 구입했다.[39] 몬탁 주택은 범죄 현장은 아니었지만, 웰드는 나중에 살인-자살 사건과의 연관성 때문에 이 부동산의 구매자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2006년에 매물로 나온 이 집은 2009년에 6750000USD로 가격이 인하되어 판매되기 전까지 3년 동안 시장에 나와 있었으며, 현재 임대 중이다.[40][41] 웰드는 2021년에 그곳에 335000USD짜리 "작은 콘도"를 구입했다.[42]
5. 대중문화 속 튜즈데이 웰드
매튜 스위트의 1991년 앨범 ''Girlfriend'' 앨범 커버에는 웰드의 사진이 실렸다. 원래 앨범 제목은 ''Nothing Lasts''였지만, 웰드의 반대로 제목이 변경되었다.[43] 웰드는 도널드 페이건의 앨범 ''The Nightfly''에 수록된 "New Frontier"라는 곡에서 언급된다. 스위트의 베스트 앨범 ''Time Capsule''의 앞면과 뒷면 커버에도 웰드의 사진이 실려있다.[44] 영국의 밴드 더 리얼 튜즈데이 웰드(The Real Tuesday Weld)는 보컬이 꾼 꿈에서 배우가 등장한 데서 이름을 따왔다.[45]
6. 출연 작품
튜즈데이 웰드는 다양한 영화와 텔레비전 작품에 출연하였다. 1956년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 오해받은 사나이로 데뷔하였고, 1959년부터 1962년까지는 TV 시리즈 《도비의 청춘》에 출연하여 골든 글로브상을 수상하였다. 1977년에는 영화 《미스터 굿바를 찾아서》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연도 | 분야 | 작품명 | 비고 |
---|---|---|---|
1956 | 영화 | 오해받은 사나이 | 데뷔작 |
1959–62 | TV | 도비의 청춘 | 골든 글로브상 수상 |
1977 | 영화 | 미스터 굿바를 찾아서 |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 |
최근에는 영화보다 텔레비전 출연이 더 잦다.
6. 1. 영화
원제The Wrong Man
'Rally Round the Flag, Boys!''
The Five Pennies
High Time
Return to Peyton Place
Wild in the Country
Bachelor Flat
Soldier in the Rain
'Ill Take Sweden''
The Cincinnati Kid
Lord Love a Duck
Pretty Poison
Looking for Mr. Goodbar
Dog Soldiers
Thief
Author! Author!
Once Upon a Time in America
Heartbreak Hotel
Falling Down
Feeling Minnesota
Chelsea Walls
Investigating Sex